전문체육 중심 대학!
국민건강생활체육 선도 대학!!

전문체육 중심 대학!
국민건강생활체육 선도 대학!!

KNSU 소식

전체공지 더 보기

KNSU 학사일정

KNSU 학사일정 더 보기

KNSU 배너존

  • 개축도서관ReLibrary캠페인
  • Microsoft Office 365계정(메일ID) 변경 가능 안내
  • 2026년 2학기 국가장학금 1차 신청
  • KNSU통합정보시스템 포털로그인 2단계 인증시행
  • KNSU 미디어 홈페이지 개설

KNSU 대회일정

더 보기

KNSU NEWS

해병대 썸네일

KNSU MEDIA 제6여단 61대대장, 해병대사령부 인사처장, 항공단장, 제2사단 작전부사단장, 26년 교육훈련단장까지 해병대의 중심에서 바다와 호국을 이끌어 나가는 우리 대학 동문이 있다. 바로 해병대 준장 김수용 동문(체육 92)이다. 중장거리 선수로 1991년 제20회 전국남여중고등학교 육상경기선수권대회 1위로 부별 신기록을 세우며 최초의 역사가 시작됐다. 김 동문은 소령에서 중령, 대령, 장성까지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로는 최초로 1차에 진급했을 뿐 아니라, 21년 만의 비사관학교 ‘정상진급’까지 달성하며 ‘최초’의 타이틀을 굳혀 나가고 있다. 2026년 군 복무 30주년을 맞이한 김수용 동문을 만나봤다. 해병대교육훈련단장 김수용 동문(체육 92) 1. 트랙 위에서 배운 인내, 군인으로서 자양분이 되다 Q. 군인의 길로 들어서기 전, 중장거리 선수였다. A.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굉장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육성하는 학교에서 단거리 선수로 발탁됐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진 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임춘애 선수가 육상 장거리 3관왕을 달성하는 것을 봤을 때다. Q.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A. 고등학교 1학년 때 몸에 슬럼프가 왔을 때다. 슬럼프로 인해 운동을 그만둬야 할지 말지 갈등이 있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해 내고 다시 재도약했다. 재도약 이후 첫 경기였던 도 대표 선발전에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선발권에 들어갔던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한국체대 재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A. 해양훈련과 스키훈련이 가장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동기들과 함께 장기자랑을 준비하며 레크리에이션을 했던 기억과 눈밭에서 계속 뛰었던 추억이 있다. 또 당시 기숙사에는 온돌방이 있었다. 중장거리부가 항상 온돌방을 쓸 수 있도록 배정해 줬는데, 고된 훈련 이후 피로를 해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운동장 트랙 100바퀴를 뛰는 날은 다른 부 동료들도 응원해 준 기억이 있다. Q. 군 장성 시점에서 한국체대는 김수용 준장에게 어떤 의미인가. A. 엘리트의 집단이다. 한국체대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무궁무진하다. 인내할 줄 알고, 인성이 올바르다. 단체생활도 잘 한다. 리더십과 강인한 체력, 추진력 등 능력이 매우 많다. 그 능력을 얼마만큼 잘 발휘할 수 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Q. 재학 시절 경험 중 ‘군인 김수용’에게 도움 된 부분이 있다면. A. 군대는 사람을 상대하고, 관리하는 조직이다. 군에서 리더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품성이 좋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운동을 했던 체대인은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부분을 체득하고, 자연스럽게 발현한다. 또 사람을 대면하고, 고통을 인내한다. 또 경기력이 좋을 때, 좋지 않을 때도 있기에 겸손할 줄 안다. 이러한 부분들이 군대에서 리더로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에 큰 도움이 됐다. 2. 도전으로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간 해병대 30년 Q. 96년 해군사관후보생 90기에 입교해 96년 해병 소위로 임관했다. 장교가 된 배경은. A. 대학교 동기들과 군 복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또 은퇴 이후 코치, 감독의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후반 해병대 소령의 특강을 듣게 됐고, 장교의 길을 알게 됐다. 이후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장교가 되기로 결심했다. 또 당시 3년이라는 복무 기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방법을 고민하다 도전하게 됐다. Q. 선수 은퇴 및 96년 졸업 직후 입교해 소위로 임관했다. 군대에서의 적응 과정은 어땠는가. A. 대학교 2학년에 선수를 은퇴하고 4학년 졸업 이후 공백기 없이 입대했다. 적응은 쉬웠다. 장거리 선수였기에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 추진력 등의 주특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는 사람을 잘 관리하고 이끌어야 조직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이 사람을 어떻게 내 사람으로 만들어내느냐’가 핵심 조건이다. 초임장교 시절 중대원들을 앞장서 이끌기 위해 함께 아침, 저녁에 10㎞씩 뛰었다. 이후 중대원들이 ‘저 리더와 함께하면 전투에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더 신뢰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Q. 국군 중 해병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A. 해병대가 나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았다. 리더로서 조직을 끌고 가고 통합시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부분이 나에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또 해병대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있었기에 해병을 선택하게 됐다. Q. 2026년, 김수용 준장의 복무 30주년이다. 관련해 소감이 있다면. A. 장군이 되고 나서 더욱 국가와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더 헌신하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 파병 마라톤 최초 1등의 주역, 정상진급의 신화를 쓰다 Q.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의 업무와 일과는 어떻게 되는가. A. 해병대 유일 교육기관으로 장교와 부사관, 병을 모두 해병대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양성 교육을 한다. 또 이들을 다시 정예 상륙군으로 길러내기 위한 보수교육과, 전역 후 전투력을 유지하게 하는 예비군 훈련도 담당한다. 7시에 부대로 출근하면 야간 상황을 파악하고 오늘의 교육 일정을 확인한다. 또 교육 간 발생한 환자 상태, 기상에 따른 교육훈련 진행 여부 및 변경의 필요성을 참모들과 확인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직접 훈련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점심식사는 부대원들과의 소통의 기회로 활용한다. 군인으로서 기본인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체육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Q. 교육훈련단장 취임사에서 “교육훈련단은 강인한 해병과 책임감 있는 리더를 길러내는 해병대의 심장이자 출발점”이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A. 바다에서 출발해 적지로 향하는 해병대의 태생적 기질을 극대화하기 위해 IBS 상륙기습 훈련에 역점을 두고 교육 시간을 크게 늘렸다. 간부 양성에 있어서는 간부 후보생들의 리더십 수준을 평가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향상하기 위해 ‘리더십평가체계’를 구축하고자 해병대사령부 리더십센터와 협업하고 있다. 또 ‘책임 있는 리더’ 육성을 위해 임기 중에 신속히 시스템을 구축하고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고자 한다. Q. 파병 중 하프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고. A. 대위 시절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갔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분쟁 지역이라 위험하고, 날씨도 50도로 매우 더웠다. 방탄복을 입고 경호도 해야 해 굉장히 힘든 임무였다. 이러한 상황 속 당시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매달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미국 해병대가 매월 마라톤 대회에서 한 번도 1등을 내준 적이 없었다. 한국체대인으로서, 대한민국 해병대 장교로서 새벽 4시에 기상해 20km를 두 달 동안 뛰며 열심히 훈련했고, 그 결과 하프 마라톤 대회에서 동맹국 인원 천 명 중 미군들을 제치고 최초로 1등을 했다. 이후 군용 잡지에 표지 모델로 서기도 했다. Q. 해병대 준장 및 교육훈련단장의 보직까지 갈 수 있었던 노력의 과정은 무엇인가. A. 군 생활을 하며 초반부터 더 두드러지게 성실하고 능동적으로 활동했다. 선수 생활로 길러왔던 역량들로 다른 인원들보다 더 의지와 정신력이 강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부대원들과 잘 지내며 큰 시너지를 냈다. 그러다 보니 군 생활에서 지휘관들이 인정을 많이 해줬다.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할 당시 군복무를 더 할지 전역할지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다. 당시 IMF로 사회가 혼란스러워 장기 복무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평소 최선을 다했던 것이 위기 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 선발이 됐다. Q.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로서 장군 진급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면 A. 장교가 되기 위한 루트로는 사관학교, ROTC, 학사장교 등이 있다. 과거에는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에게서 장군 진급자가 많이 나왔다.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은 ‘임기제’ 준장 진급이 많아서 2년 후 전역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출신에 상관없이 역량과 성품, 성과에 따라 장군 진급의 기회가 넓게 열려있다. 나 역시 임기제가 아닌 정상진급으로 장군의 영예를 얻었다. 주어진 임무와 직분에 더욱 충실하겠다고 다짐한다. 4. 계급이 아닌 ‘사람’을 향하는 인간 중심의 리더십 5월 18일 해병대 준장 김수용 동문이 본교 합동강의실에서 체육학과 대상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김 동문은 “여러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내 가능성을 스스로 의심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하라.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시도하는 사람이 돼라”는 조언을 전했다. 사진:한국체육대학보 Q. 해병대 항공단에서 보병 최초로 지휘관 임무를 수행하는 등 조직에서 중요한 위치에 많이 투입됐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A. 이는 ‘인간 중심의 리더가 되자’는 내 삶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 철학을 갖게 해주신 스승이 어머니다. 어머니는 항상 “남에게 손가락질받는 짓 하지 말고 살아라. 네가 힘이 있다면 약자를 보호할 줄 알아라.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바라고, 사회에 나가서 덜 성장해도 되니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더불어 살아라”고 하셨다. 이와 일맥상통하게 대위 때 군 생활의 철학을 갖게 됐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군에서 ‘인간 중심의 리더’가 되고자 했다. 어떤 ‘계급’이 아닌, 어떤 ‘사람’이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윗사람, 동료, 부하 등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하게 대했기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더 좋게 평가해 줬고, 그러면서 큰 시너지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Q. 군에서의 수많은 상황 속 지휘관으로서 결단을 내릴 때 김수용 준장의 철학은. A. 평소 모든 결심의 중심을 사람에게 두고 있다. 장비가 고장 나고 시설이 파손된 것은 고칠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으면 고치기 힘들고, 사람이 다치면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로서 관계에 있어 회피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Q. 교육훈련단장으로서 장병들과 소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 A. 나는 지휘관이 조금 더 부지런하고 세밀하게 장병들을 살펴보고 가까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병들이 부대에 전입해 오면 한명 한명 면담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해 전달한다. 단장과의 추억이 병사들에게 작은 힘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전역 전에도 병사들을 직접 면담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해 전역 당일 손편지와 함께 전달한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해병대의 이름으로 함께했던 전우에 대한 감사, 사회로 나아가는 걸음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는다. 장병들과의 소통을 위한 지휘관의 관심과 노력, 정성이 부대를 안정시키고 부대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며, 궁극적으로 임무를 완수하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Q. 후배 장병들에게 어떤 상사로 기억되고 싶은가. A. ‘어떤 계급’이 아닌 ‘어떤 사람’으로 전역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다. 부하들에게 ‘해병대 사령관’, ‘장군’이 아닌, ‘사람을 소중하게 여겼다’, ‘후배들에게 리더로서 본보기를 보여줬다’, ‘인간적으로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는 말로 기억되고 싶다. 그 정도만 되면 군 생활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Q. 군인으로서 가장 필요한 역량과 덕목은 무엇인가. A. 시대가 바뀌어도 군인으로서 필요한 기본 자질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국가사회 공동체를 향한 충성, 튼튼한 체력 그리고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Q. ‘군인’을 꿈꾸는 한국체대 학생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A.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자에게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미리 준비한다면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 Q. 26년 5월 18일 모교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한국체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한국체대 후배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 가능성을 스스로 폄하하거나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어떤 길을 가더라도 지금 운동하는 것처럼 그런 정신과 마음, 자세로 생활한다면 어디서든지 존중받고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잘 발현할 수 있는 한국체대인이 됐으면 좋겠다. 출처 : KNSU 미디어(https://news.knsu.ac.kr)

썸네일2

언론 한체대, 건강 증진위한 AI 스포츠 플랫폼 미션핏 선보여 배정호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체대, 배정호 기자] 한국체육대학교 AI융합 스포츠분석센터가 AI 기술과 스포츠를 결합한 신개념 플랫폼 ‘미션핏(Mission Fit)’을 선보였다. ‘미션핏’은 AI 기술 발전이 가져온 편의성 이면의 운동 부족 문제에 주목해, AI 를 신체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도구로 전환하고자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지난 7일 출시식에서 AI 자세 인식기 반 운동 시스템과 단계별 미션 콘텐츠, 실시간 랭킹 시스템이 공개됐으며,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직접 AI 코칭과 자세 분석 기능을 체험했다. ‘미션핏’은 AI 기술 발전이 가져온 편의성 이면의 운동 부족 문제에 주목해, AI 를 신체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도구로 전환하고자 기획됐다. 사용자의 운동 동작 을 AI가 실시간 분석하고, 수행 결과에 따라 점수와 랭킹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설계돼 단순 반복 운동을 넘어 게임처럼 즐기며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총 상금 300만원 64강으로 이뤄진 흥미로운 대회도 개최될 예정이다. 미션핏 시즌1은 오는 8월 7일까지 진행되 며, 이후 전국 사용자 랭킹을 바탕으로 상위 참가자를 선발해 8월 중순 ‘미션핏 챔피언십’을 개최할 예정이다. 대회는 64강 토너먼트 방식으로 운영되며 총상금 은 300만 원 규모다. 박재현 AI융합 스포츠분석센터장은 “미션핏은 AI 기술을 통해 운동을 놀이와 도전 문화로 전환하려는 새로운 시도다"고 말하면서 “AI 기반 스포츠·헬스케어 플랫폼 연 구를 지속 확대해 실제 현장과 일상 속 신체활동 증진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체대 AI융합 스포츠분석센터는 국립대학육성사업 성과를 기반으로 AI와 스포츠 융합의 가능성을 생활체육 영역까지 확장하며, 미래형 스포츠 참여 생태계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미션핏 플랫폼은 공식 홈페이지(https://www.missionfit.r e.kr)를 통해 이용 가능하다. 배정호 기자 bjh@spotvnews.co.kr 출처 : SPOTV NEWS(https://www.spotvnews.co.kr)

썸네일2

KNSU MEDIA 코트를 호령하던 선수에서 명감독으로 돌아왔다. 한국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 박주봉 동문(체육 83)이 그 주인공이다. 오랜 해외 지도자 생활로 자신만의 지도 철학 세우고, 한국 배드민턴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26년만의 복귀, 한국 배드민턴 사령탑이 되다 ‘배드민턴 황제’ 박주봉 동문(체육 83)이 한국 배드민턴 지휘봉을 잡은 지 1년이 지났다. 선수로서 전설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영국과 말레이시아, 일본 국가대표 지도자로 보낸 세월이 도합 26년이다. 각 국에 ‘박주봉 매직’으로 배드민턴 전성기를 안긴 그가 한국에 돌아왔다. 4월 20일 본지는 충북 진천군 국가대표선수촌에서 한국 배드민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박주봉 동문을 만났다. 소년, 셔틀콕에 운명을 걸다 국민학교 강당 한 켠, 눈으로 셔틀콕을 좇는 한 아이가 있다. 초등교사 아버지 손잡고 온 어린 아이다. “연식정구(소프트 테니스) 선수 출신 아버지가 학교에 배드민턴부를 만들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형, 누나들이 배드민턴 치는 걸 봤다.” 구경하던 아이 손에 자연스럽게 라켓이 쥐어졌다. 10살 무렵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년 만에 두각을 보였다. 12살이 되던 해 전국소년체전에서 첫 우승을 거뒀다. 소년은 라켓을 쥔 채 미래를 그렸다. “국가대표가 돼 세계 대회에서 우승해야겠다.” 당찬 소년은 훗날 라켓으로 세계를 평정하는 황제로 자란다. 꿈은 금세 이뤘다. 17살에 태극 마크를 달았고, 불과 19살의 나이로 세계 대회를 우승했다. 단숨에 배드민턴계 신성으로 떠올랐다. 이후 20살부터 태릉살이를 시작했다. 오랜 단짝 친구 허영모 동문(체육 83)과 한국체대에 입학했다. “나와 복싱 허영모 선수가 전국에서 전 종목 통틀어 경기력 1, 2등 한다고 그랬다. 당시 한국체대 스카우트 대상이었다.” 그가 한국체대행을 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공부’다. 당시 한국체대는 태릉 국가대표선수촌 옆에 위치해 있었다. 대학이 선수촌과 가까우니 오전 수업만큼은 무난히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성실함’이 만든 106연승 대기록 학업과 운동을 병행한 박 동문은 종횡무진 활약했다. 종합선수권대회에서 106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 동문은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107연승이 깨졌던 날을 꼽았다. 당시 그는 국내 가장 큰 대회로 불리는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대학부와 실업팀이 통합 운영되는 일명 국내 ‘왕중왕전’ 대회다. 박 동문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약 3년간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대기록을 쌓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 3학년 남자 단식 결승전, 그 기록의 종지부가 찍혔다. 상대는 한국체대 1년 선배 성한국 동문(체육 82)이었다. 박 동문이 첫 세트를 무난히 가져왔지만, 연달아 두 세트를 내줬다. 3년 만의 국내 대회 패배.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온 것일까. 그럴 일은 없었다. 박 동문은 같은 대회 남자 복식 경기에서 보란 듯이 1위에 올랐다. 파트너는 그의 106연승을 저지했던 성한국 동문이었다. 둘은 결승전에서 상대에게 단 8점만 허용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다. 그는 운동선수에게 흔히 찾아오는 슬럼프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박 동문이 꼽은 자신의 강점에서 찾을 수 있다. 훈련에 임하는 성실함과 꾸준함. 선수촌 집결 시간이 오후 5시면, 그는 점심을 먹고 2시에 선수촌에 복귀했다. 홀로 달리기를 뛰고 근력운동을 했다. 휴식 후 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지금 안 하면 내일이 힘들다”라는 단순한 이유다. 성실함이 만든 그를 향한 찬사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그는 상대를 꿰뚫어 보는 예측력을 높게 평가받았다. “네트에서 셔틀콕이 상당히 빨리 온다. 거리도 가깝다. 치는 순간 다음을 예측해야 한다. ‘이렇게 치면 다음 코스는 1이 올 거다, 이렇게 치면 다음에 어떤 기술이 올 거다’처럼 말이다.” 이러한 예측력을 바탕으로 결정타를 날리는 네트 플레이 능력을 갖췄다. 복식 전위 선수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다. 특히 그에게 체력 안배는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 박 동문은 단식과 복식을 모두 소화한 이례적인 선수다. 단식과 복식 모두 1번, 주요 선수로 출전했다. 따라서 경기 중 무리한 움직임은 최소화해 능률적 체력 안배도 신경 썼다. *편집자주 배드민턴 단체전은 단식 3경기, 복식 2경기로 구성됩니다. 주로 실력이 좋은 선수를 앞 번호 경기에 배치합니다. 박주봉 동문은 단식과 복식 1번을 맡던 핵심 전력이었습니다. ‘한국 스타일 가미’ 고유한 지도 철학을 만들다 한국 사령탑 박 동문은 배드민턴 대표팀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오랜 해외 지도자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박 동문은 문화 차이로 인해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영국 지도자 생활 초반, 고유한 영국 및 유럽 문화에 적잖이 당황했다. 문화가 다르니 지도 방법도 바꿔야 했다. 한국과 달리 너무 자율적인 분위기에 박 동문은 적응이 안 됐다. 말레이시아에선 이슬람 종교를 가진 선수들이 특정 시간에 기도를 하거나 라마단 기간 금식을 해 지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에서도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영국과 말레이시아에 비해 가까워 문화 차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차이는 있었다. 한국과 달리 같은 소속 선수들끼리만 복식 파트너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 동문은 각 나라마다 한국 스타일을 가미하며 새로운 방안을 시도했다. “문화는 존중하면서 선수를 가르쳤다.” 어느 순간 박 동문은 고유한 문화에 한국 스타일을 가미하는 방법을 배웠다. 초반 적응 기간을 거치고, 인정할 부분은 인정했다. 이후 지도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박 동문은 해외 지도 방식을 한국에 적용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20년간 지도하며 성과를 냈던 시스템을 한국에 이식했다. 가장 큰 변화는 소집 훈련 방식이다. “일본은 대회가 있으면 소집 훈련을 한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면 공항에서 해산한다. 집이나 소속 팀으로 각자 알아서 돌아가는 식이다. 한국 축구에서 손흥민 선수가 월드컵 아시아 리그 예선이 있으면 이제 소집돼서 훈련하고 대회 나갔다가 클럽 팀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이런 변화를 시도한 이유는 ‘리프레시’ 즉, 회복을 위해서다. 배드민턴 대표팀은 1년에 220일 정도를 합숙 훈련이 가능하다. 한 달에 한 번 국제 대회에 출전하니, 사실상 선수촌에서 머물게 된다. 국내 대회 출전을 위해 소속팀 훈련을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 공항에서 곧장 선수촌으로 돌아와야 했다. 박 동문은 지휘봉을 잡고, 소집 훈련 방식을 택했다. “분위기 전환도 된다. 귀국 후 선수들이 회복하고 선수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회복을 위한 시간임을 선수에게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변혁을 일으켰지만, 박 동문은 아직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많다. 먼저, 선수촌의 시설과 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선수촌은 내부에 스포츠과학 연구원, 물리치료사, 웨이트 트레이너가 있다. 이들과 협업해 더 나은 훈련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박 동문의 바람이다. “우리 선수 시절에 말 그대로 시키는 대로 다 했다. 스포츠 과학의 존재감은 크지 않았고, 스파르타식이었다. 배드민턴장 훈련은 코트 출신인 내가 할 테니, 그 외 훈련은 스포츠과학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걸 시도하는 중이다.” 선수에게 이론 교육도 강화하고자 한다. 특정 훈련을 하는 이유, 식단 관리가 필요한 이유처럼 선수가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운동선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부분”이라고 말한다. 배드민턴이 만들어준 인연 박 동문이 한국체대를 떠난 지 30년이 흘렀다. 하지만 인연의 끈은 팽팽하다. 후배 이현일 동문(체육 99)이 안세영(삼성생명) 지도자, 여자 단식 코치로 함께 국가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체대 조교수 시절 같은 층 연구실을 사용한 사격 장갑석 감독도 선수촌에서 마주치곤 한다. 배드민턴과 만난 지 50년 넘게 흘렀다. 그가 느낀 배드민턴의 매력은 무엇일까. 셔틀콕에 맞는 순간 ‘통’ 튀기는 소리, 의도한 곳으로 날아가는 셔틀콕의 비행 궤적, 계획된 전략에서 나온 포인트의 희열. 하나부터 열까지 선수가 직접 만들어 가는 매력적인 종목이다. 한국 사령탑 1년 차, 박주봉 동문은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셔틀콕에 운명을 걸었던 소년은 한국 배드민턴의 미래를 설계하는 거장이 됐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를 남겼다. “성실함과 노력은 결국 최고의 결과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체대 화이팅!” [사진: 한국체육대학보] 본지 12호(1983년 9월 8일 발간) 1면에 실린 박주봉 동문(체육 83)의 제3회 배드민턴선수 권대회 남자 개인, 복식 우승 소식이다. 작성 : 윤정우 편집장 출처 : KNSU 미디어(https://news.knsu.ac.kr)

만족도

KNSU MEDIA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한국체대 시설 환경 개선 만족도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에 참여한 227명의 학우들 중 84.2%가 최근 이뤄진 시설 및 환경 개선이 대학 생활 환경 전반의 질을 높였다고 답했다. 개선관(다목적체육관)의 만족도는 77.8%가 나왔다. 이어 캠퍼스 환경 및 휴식 공간은 75.7%가 만족했다. 우리 대학에 새롭게 찾아온 변화가 학우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한국체대 시설 환경 개선 만족도 조사가 진행됐다. 조사에 참여한 학우들의 84.2%가 최근 이뤄진 시설 및 환경 개선이 대학 생활 환경 전반의 질을 향상했다고 답했다. 해당 조사는 학우 227명이 참여했으며 개선관을 포함한 캠퍼스 환경 및 휴식 공간 개선 수준에 대한 만족도를 담았다. 특히 학우들은 개선관의 시설 규모와 공간 활용성에 대해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조사 결과 ▲매우 만족 36% ▲만족 41.8%로 긍정응답이 77.8%에 달했다. 이어 ▲보통 20% ▲불만족·매우 불만족 2.2%가 뒤를 이었다. 개선관의 시설 상태(장비·청결도·안전성 등)에 대한 부분은 ▲매우 만족 42.3% ▲만족 38.8% ▲보통 17.2% ▲불만족·매우 불만족 1.7%로 나타났다. 개선관이 학생들의 체육 활동 및 수업 환경 개선에 도움 되는지와 관련된 물음에 학우들의 80.6%(매우 만족 39.2%·만족 41.4%)가 만족했으며 18.5%는 보통, 나머지 0.9%만이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개선관을 자주 이용하는 강승우 학우(사회체육 25)는 “개선관 내 농구장(다목적체육관)을 수업의 목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용한다. 보통 체력단련실에 주로 방문한다”며 “새로운 건물에서 깔끔한 시설들과 새 기구가 있는 헬스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불만족을 선택한 A 학우는 “개선관을 학생들이 대관해서 사용할 수 없는 점에 불만족을 선택했다. 체육대학교 학생으로서 체육 시설을 활용해 자율적으로 운동하고 활동할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거나 대관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이 시설 활용 측면에서 아쉽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조사에 참여한 다수의 학생이 “개선관에서 동아리 활동이 가능해졌으면 좋겠다”며 신청이나 예약제 마련에 관한 의견을 표했다. 이에 박재현 교무처장은 “현재 개선관의 청소 및 안전·소방 관리자 등 아직 관리 주체가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는 강의를 위해 임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개선관 이용이 제한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교무처장은 “모든 관리 주체가 정해지고, 준비가 완료되면 학생들이 마음껏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대학에서 학생들의 시설 만족도가 높이 나온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시설 개선을 잘해 나가며 학생들이 훌륭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한편, 골프장 및 대운동장 주변 휴게 공간 등 캠퍼스 환경 및 휴식 공간 개선 수준의 전반적인 만족도에 대해 학우들의 답은 ▲매우 만족 37.6% ▲만족 38.1% ▲보통 20.4% ▲불만족·매우 불만족 3.9%로 나타났다. 작성: 김승원 기자 kswcoco08@gmail.com 출처 : KNSU 미디어(https://news.knsu.ac.kr)